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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밥 스타일에 충실하게 기초를 둔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는 결코 중요한 연주자로 거론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지난 십 년간 동료 음악가들에 의하여 매우
존경 받고 있는 연주자다. 뉴 잉글랜드에서 성장한 후에, 그
유명한 재즈의 명소인 런던 하우스의 하우스 트리오의 리더로 오랜기간 활동하기 전에, 어떤 상황에서도
요구되는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시카고로 이주하여 연주하였다.
(1957-1969년) 1970년 메사추세츠로 이주하여, 그의 아내이자 보컬리스트 겸 화가인(얼마 전 발매된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인 크리스마스 송스의 앨범 표지도 그녀가 그린 작품), 메레디스 디앰브로시오와 연주하며 프리렌서로
활동을 하며 재즈 파티와 재즈 페스티벌에 출연을 하였다. 그는 리더로서 Replica(1958), Vee-Jay(1960), Atlantic & Sunnyside (1960 ~), 일본 Venus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매해마다 신보를 발매하고 있다. 베이시스트 제이 레온하트, 드러머
조 아시온과 함께 오리지널 트리오 라인업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Vee-Jay에서는 리
모건과 웨인 쇼터 등의 사이드 맨으로 참가하여 레코딩을 남겼다. 특히나 90년 초반 일본 비너스를 통해 발표된 앨범은 일본에서 높은 판매고를 이루며(평균
발매 첫 주에 1만장을 넘고 있다.) 일본 내에 거주하며
한동안 활동을 이어간다. 현재는 미국에서 거주를 하지만 일본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매해 일본에서 대대적인
전국순회 공연을 열고 있으며 내년 봄에도 어김없이 대대적인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내년 4월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그간 음반으로만 그의 음악을 감상하던 팬들에게 직접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에디 히긴스의 음반은 매 앨범마다 재즈로서는 드물게 3,000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고 수입앨범까지 포함하여 1만 5천장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표되는 신보는 에디 히긴스와 제작자가 이은미가 불러 히트한 <기억 속으로>의 원곡을 듣고 한번에 레코딩을 결정했을
정도로 한국 팬들에 관한 각별한 애정을 표한 앨범이기도 하다. 말년에 생전에 만끽하지 못한 인기를 누리며
일본과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에디 히긴스의 연주가 지속적인 사랑을 얻는 이유는 너그러운 그의 마음만큼이나 넉넉한 음악과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아름다운 보이싱 그리고 언제나 늘 편안함을 담은 그의 마음이 전해지는 연주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1958 Ed Higgins Trio (Replica)
1960 Eddie Higgins (Vee-Jay)
1965 Soulero (Atlantic)
1978 Dream Dancing (Claremont)
1978 My Time of Day (Spinnster)
1980 Sweet Lorraine
(Toshiba EMI)
1982 Once in a While (Spinnster)
1986 By Request (Statiras)
1990 Those Quiet Days (Sunnyside)
1994 Zoot's Hymns (Sunnyside)
1995 In Chicago (Solo Art)
1996 Portrait in Black and White (Sunnyside, Venus)
1997 Haunted Heart (Venus)
2000 Time on My Hands: Arbors Piano Series, Vol. 6 (Arbors)
2000 Music of Jobim: Speaking of Jobim (Sunnyside, 2002 Venus)
2001 Bewitched (Venus)
2001 Don’t Smoke In Bed (Venus)
2002 Again (Venus)
2002 Smoke Gets In Your Eyes (Venus)
2002 Dear Old Stockholm (Venus) ---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3 You Don't Know What Love Is (Venus)
2003 My Foolish Heart (Venus) ---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4 Moonlight Becomes You (Venus) --- 국내 라이센스
발매
2004 Christmas Songs (Venus) --- 국내 라이센스 발매
<앨범소개>
여전히
맑고 부드러우며 이른 아침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 방울처럼 싱그러운 피아노 터치.
옛날 중국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있었다. 또 그의
거문고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사랑했던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자신의 연주를 알아주는 종자기로 인해 백아는 늘 연주가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 종자기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고사성어 지음(知音)의 배경으로 전해지는 중국의 오랜 이야기다. 지음이라는 표현은 현재
마음이 통하는 친한 친구 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만 순수하게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연주자는 언제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최소한 음악은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연주자만큼이나 이를 감상하고 즐거워할
청자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연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1차적인
감상자는 어쩌면 음반사의 제작자일 지도 모른다. 그가 있어야 음반 녹음과 발매가 가능한 것이고 또 그래야
많은 애호가들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일 텐데 이 시대에는
적절한 감상자를 만나지 못한 연주자들이 참 많다. 보통 이런 경우 우리는 때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라는
식의 표현을 쓴다. 피아노 연주자 에디 히긴스도 마찬가지의 경우였다. 그는 분명 50,60년대에 등장하여 웨인 쇼터, 리 모건 등의 명인들의 앨범에 사이드맨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개인으로서의 그의 존재는 그다지 인식되지 못했다. 그의 연주가 인정을 받기에 50,60년대의 재즈 무대에는 너무나도
많은 연주자들이 확고한 자신의 것으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에디 히긴스는 그저 평범한 재즈
피아노 연주자 중의 하나였다. 아니 어쩌면 에디 히긴스 본인이 이러저러한 재즈 담론들과 무관한 편안한, 자족적인 삶을 더 선호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50,60년대의 모습은 아주 희미하게 재즈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후의
활동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성 보컬 메레디스 드 암브로시오와 결혼을 하고 그녀의 노래에 반주를
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피아노 연주자로서 에디 히긴스의 모습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 대해 유달리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본인이었고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를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현재 비너스 레이블을 이끌고 있는 테츠오 하라가 그 주인공이다. 테츠오
하라는 에디 히긴스의 연주에서 50,60년대 하드 밥 시대의 음악적 성과는 물론 에디 히긴스 특유의
낭만적이고 낙관적인 정서를 알아보았다. 그것으로 에디 히긴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60대의 나이에서 그는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 출발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피아노에는 시대의 연륜이 만들어낸 낙관과 여유가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동그란 피아노 터치는 싱그러운 젊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노장의
넉넉함과 젊은 감성의 신선함이 만난 그의 음악은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함께 시대의 가벼움을 복고적인 향취로 보완하려는 젊은 감상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겐 에디 히긴스가 몇 살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40대 정도가 됐을 법한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노 연주자가
아닐까 상상했을 뿐이다. 사실 연주자의 나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니 생존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그의 음악이 현재에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면 그 음악은
시대를 떠나 현재의 음악이 아닌가? 아무튼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에디 히긴스의 지음들은 갈수록 증가했다. 우리 한국에서도 그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감상자들이 갈수록 증가했다. 오스카
피터슨, 케니 드류, 듀크 조던 이후 새롭게 사랑 받는 스탠더드
피아노 연주자로 그는 현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테츠오 하라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비너스에서 발매된 에디
히긴스의 10여장 되는 앨범들은 언제나 한결 같은 분위기로 늘 그 자리에서 감상자를 맞이했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로 스탠더드 곡들을 노래했고 감상자들은 그의 피아노 노래에서 편안함과 삶의 안락함을 느꼈다. 그런데 앨범이 거듭될수록 맛 좋은 그의 연주에 다소 싫증을 내는 무리들이 생겼다. 모든 것은 일상화가 되는 순간 그 맛, 색, 향기를 잃지 않던가? 혹자들은 그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 가볍다, 달콤함만을 추구한다, 변화가 없다는 식의 견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일견 이러한 발언들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에디 히긴스의
모습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으며 또한 그 스스로 미묘한 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 스트링 오케스트라, 비브라폰과 함께한 음반
<Moonlight Becomes You>에서 온화한 쿨 재즈를 연주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고 또한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차분하게 오래된 스탠더드 곡들의 멜로디를 되짚어가는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If Dreams
Come True>앨범에서 우리는 같은 듯하면서도 달라진 그의 연주를 듣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앨범은 이미 우리에게 기분 좋게 각인된 에디 히긴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그의 피아노 터치는 맑고 부드러우며 이른 아침 풀잎에 떨어지는 이슬 방울처럼 싱그럽다. 그리고 익숙한
스탠더드 곡을 선택해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노래를 불러나가는 그의 연주 스타일도 그대로 잘 살아 있다. 게다가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춰 온 제이 레온하트(베이스) 조 아시온(드럼)의 존재도 여전하다. 이들은
싫증을 내지 않고 언제나 이번 연주가 처음 하는 연주인 것처럼 싱싱하고 풋풋한 연주를 들려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에디 히긴스의 앨범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의 절반 이상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에디 히긴스는 미묘하지만 새로운 질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어느 때보다 음악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위기에 연주가 종속된다는 식의 오해를 종식시키려는 듯 그의 편안한 연주 속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50년대 하드 밥과 쿨, 엄밀하게 말하면 쿨 밥의 색채가
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나이를 언급하게 되는데 나이 든 연주자가 들려주기에는 너무나 젊은
탄력과 세기가 느껴진다. 예를 들어 “St. Louis Blues”를
들어보자. 이 곡에서 그의 피아노 터치나 진행은 같은 비너스 레이블의 젊은 연주자들보다 직선적이고 힘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은 이 앨범만으로 잘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나 미묘하기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 동안 그가 만들어내는 달콤한 분위기에 이끌려 연주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이 기회에 그의 연주를 재청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실 어쩌면 에디 히긴스는 우리가 기대하는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가 실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언제나
늘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같은 자리를 지키는데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의
여러 풍파 속에서도 늘 같은 만족, 여유,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질리지도 않고 즐겁게 지나간 옛 시대의 음악들을 노래하듯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음악에 담긴 자연스러운 여유는 바로 이러한 것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따라서 만약 우리가 그에게 큰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에디 히긴스 본인과 상관없는 우리만의 폭력적인
규정이 아닐까? 오히려 늘 그 자리에 있기에 편안한 음악으로 그의 음악을 즐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에디 히긴스의 음악은 언제나 쉽게 연주하고 쉬운 감상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그의 음악은 끝없는
신뢰와 마니아적인 애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편 이번 앨범에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곡이 연주되고 있어 반갑다. 바로
이은미가 노래해서 큰 인기를 얻었던 “기억 속으로”가 연주된 것이다. 지난 2004년 11월 나는 일본에 가서 비너스 레이블의 테츠오 하라씨와
레이블의 음악적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비너스의 앨범들을 수입하고 있는 한국의 강앤뮤직에서
한국에서도 그의 인기가 꽤 높으니 한국 노래를 연주하고 싶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4곡의 후보곡을 받았는데 에디 히긴스와 테츠오 하라는 서로 합의도 없이 “기억
속으로”를 선택했다고 한다. 듣는 순간 아! 이 곡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나?
기왕이면 좀 더 길게 연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기억 속으로”에 대한 에디 히긴즈의 해석은 의외로 원곡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 가사
없이 오로지 멜로디만 듣고 지나간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한 것이다. 비너스
레코드의 사무실에서 테츠오 하라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몇 차례 “기억 속으로”를 되돌려 감상했다. 그리고 곡의 정서를 이야기 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다시 이번 새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었다. 지금은 자정이
가까워지는 일요일 밤이다. 한 주의 피곤함이 슬며시 사라지면서 새로운 한 주의 번잡함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 시간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 연주가 들린다. 나는 편안함을 다시 느낀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아! 그리고 이번
에디 히긴스의 새로운 앨범의 한국 반에는 한정적으로 특별히 2004년도 비너스 레이블의 대표작 모음집이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보너스 앨범이 있어야 더 판매가 잘 되는 한국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쉬움이기도 하지만 앨범 자체로 보면 단순한 보너스 앨범을 넘어서는 충실함이 있다. 특히 2004년 앨범이지만 이번 에디 히긴스의 새 앨범과 함께 국내에 소개되는 해롤드 메이번, 밥 킨드레드의 새 앨범에서도 한 곡씩 선곡 되어 그 매력이 더하다. 비너스의
복고적인 취향 하에 모인 유럽과 미국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들이 담겨 있는데 단순한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완성된 앨범으로 생각해도 좋을 만큼 배열이
유기적이기에 감상에도 아주 큰 만족을 준다.
2004년 12월 19일 낯선청춘 최규용
변함없이 멋지군요, 에디
히긴스!
이런 일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어, 또 에디 히긴스 앨범이 나왔네?’ 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에디 히긴스에게 익숙해지는 현상은 있지만, 하지만 들어 보면
역시 좋다. 일년 내지 이년 정도에 한 작품 정도로 적게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는 그 기대감도 더하여져 20%정도 실제 보다 좋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하는
사람으로서 그 때마다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이나 마코토씨가 자신은 무라카미 하루키씨가 부럽다고 에세이에 썼다. 시이나씨는
잡지 외에도 연중 집필하는 양이 많은 작가이다. 한편 무라카미씨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잡문을
쓰지 않으며, 일년이나 이년의 시간을 들여 한 권의 단행본에 승부를 건다. 그리고 대단한 호평을 얻고 있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아요, 시이나씨. 많은 글을 쓰고 그리고 우리들은 그 글을 읽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그 때마다 ‘아, 좋은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인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에디 히긴스도 틀림없이 인간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들어서 익숙해져 있기는 하지만 들으면 역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의 에디 히긴스, 최근 발매된 많은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또 같은 말을 번복하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곡에 있다. 연주? 연주는 이미 완벽하다. 이미
상당히 나이가 들었지만 이번에는 힘이 부족하다와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다시 젊어지는 것일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정력적인 손놀림을 선보인다. 바로 여러분
들으시는 그대로 입니다. 안심하고 들을 수 있는 점이 히긴스의 결점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원숙한 모습. 그의 훌륭한 부드러운 스윙은 변함없이 건재하다.
그렇다면 팬의 기대는 선곡 되는 곡에 달려있다. “이번의 선곡. 어떻습니까?, 여러분” 라며
내가 자랑하며 뻐기는 것도 뭣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곡 모음을 훌륭한 선곡이라고 한다. 거드름 피우지
않는 선곡, 유별난 것을 자랑하지 않는 선곡. 부드러운 선곡. 그리고 스릴을 잃지 않는 선곡. 마치 거드름 피우지 않는 미술관
전람회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장 한 장에 시선을 두면서 관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눈을 가늘게 뜨게 하거나 혹은 살짝 미소 짓게 하면서 풍요롭고 부드러운 시간을 가지게 한다.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몰래 미소를 지은 것이 “Nightingale”,
“A Weekend In Havana”, “Frenesi”와 같은 라틴물이다. “A Weekend
In Havana”는 해리 워렌 작곡이기 때문에 정식 라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바나라는 이름이 붙으면 멋진 라틴곡이 된다. 적어도 워렌은 하바나에 생각을 집중하여 작곡했음에 틀림없다. 전람회 중에서도 한층 더 밝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면서 이 세곡이 빛난다.
“Nightingale”, 나는 특히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정지한다. “My Shawl” 등
라틴 명곡이라고 하는 명곡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라틴풍 선율의 제왕, 자비에르
쿠갓 영어식 이름 자비아 쿠가의 작품이다. 그의 곡 중에서도 가장 조용한 곡, 열대에 조용히 핀 한 송이 꽃. 이것에 완전히 반해 버리고 만 것이다.
에디 히긴스 정도의 음악 인생의 달인이 되면 이미 더이상 곡을 망치는 일은 없다. 그런 건방진 일을 해서 자신을 진보적인 뮤지션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생각은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아름다운 곡을 아름답게 연주하여 자신도 곡을 즐기고 듣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엔터테이너 정신이다. 그러나 이 엔터테인먼트 기분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재즈 팬이라고
하는 종족이다. 모든 재즈 팬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주
일부의 외골수적인 사람들, 재즈는 어렵지 않으면 고급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이
사람들은 성가진 존재이다. 예를 들어 이 사람들은 에디 히긴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흔한 스탠더드를 늘어 놓으면서, 그리고 예전의 대중적인 라틴곡
같은 것을 하는, 크리에이티브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작품이 재즈를 망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바보, 나는 품위 있는 사람이지만 비속한 말이 불쑥 나와 버리고 만다. 당신들은
이상하게 재즈를 정신화 하고 신성시 하며, 알기 어려운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풍조가 재즈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재즈 팬의 수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뭐 아무래도 좋다. 좋지
않은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를 들으면 이런 것들은 무산되어 버린다.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편안히 해주는 연주이다. 아름답고
부드럽게 그리고 단정하게 하는 피아노이다. 그러므로 에디 히긴스 타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에디 히긴스를 듣는 적절한 시간. 샐러리맨이라면 회사부터 퇴근하여
식사를 하고 목욕을 한 후, 자 이제 그만 잘까. 오늘은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 가시에 가슴이 찔려 아직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네. 이 가시를 뽑아 응어리를 없애 주는 것이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이다. 편안한
잠을 약속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심정은 어렵고 첨단적인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곡은 전부 14곡이 들어 있다. 이전에 나는 옛날의 LP 레코드와 같이 6곡이면 충분하다라며, CD 곡수가 많은 것을 비난조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 CD를 보고
알게 되었다. 이처럼 전곡 모두 훌륭한 곡이면 많아도 전혀 상관없다.
요약하면 곡 수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곡인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곡부터 듣는 경우가 없다. 반드시 내가 좋아하는
곡을 골라서 버튼을 누른다. 이미 이것은 거의 모든 CD에서
마찬가지이며, 이 CD는
(2)(7)이라든가, 혹은 다른 CD는 (3)(8)이라는 식으로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정해져 있다. 대개 2곡 정도이다. 그러나 이 에디 히긴스 음반은 그 수가 상당히 많다. 골라 보자. 우선 라틴곡 3곡. 그리고 “It’s All Right With Me”, “Minor Swing”,
“St. Louis Blues”, “Shinjuku Twilight” 전부 합해 8곡이나
되어 버렸다. 우선 “It’s All
Right With Me”인데 이 곡은 항상 제이 제이 존슨과 카이 와인딩 트롬본 팀의 연주를 즐기면서 듣고 있다. 이 근대 건축풍의 플레이에 비하여 히긴스는 얼마나 우리네 가옥풍인가.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애드립을 즐긴다. 덧붙여 말하면 미국에서는
애드립이라고 말하지 않는 듯하다. 솔로라고 말하는 것을 누군가에게서 들었다. 그렇다. 피아노의 시라사키 아야코씨다. 멜로디어스한 솔로로 2분 21초. 그리고 2분 40초 정도에서
솔로 전개가 변화해간다. 이 베리에이션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세컨드 리프라고 해도 좋을까, 제2주제 같은
프레이즈를 설정하여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솔로를 만들어 간다. 이렇다면 옛날의 재즈 악사는 소위 테마라고
하는 주제 외에 세컨드 리프라고 하는 제2테마를 준비하였다. 솔로가
길어져서 지루해지면 서비스로 ‘한 박 더’ 추가해 준 것이다. 현재의 뮤지션에게 이런 배려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장고 라인하르트의 “Minor Swing”은 우선 곡명에서부터
최고가 느껴진다. 음이 들려오는 곡명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재즈에서 마이너 음조로 블루스풍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곡에서도 밝고 빛나는 솔로의
발전적인 전개가 있다. 아름다운 프레이즈가 잇달아 나타나며 듣는 사람의 기분은 상쾌해진다. 좀더 계속되길 바라는 애절한 심정을 뒤집듯이 베이스 솔로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연주 시간은 3분
조금 넘는다. 진정 3분 예술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다. 솔로라고 하는 것은 조금만 더 듣고 싶다고 느끼는 정도가 적당하다.
내가 세계 3대 악곡의 하나로 드는 “St. Louis Blues”. 에디 히긴스는 여기에서는 또 얼마나 고풍스러운 연주법을 선보였던지. 부기우기풍이다. 상당히 오래 전 하라주쿠역 근처에 있었던 현재는
사라진 라이브 하우스, 키노트에서 “St. Louis Blues”를
연주하는 에디 히긴스를 본 적이 있다. 이 한 곡이 연주된 후 가게 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에디 히긴스는 몸을 크게 움직이며 조금 과장되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라이브
하우스의 분위기는 마치 1920년대에 배럴하우스로 변신하여 커다란 박수갈채로 들끓었었다.
그리고 “Nightingale”과 이 곡 중 어느 쪽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할지 상당히 고민에 빠지게 하였던“Shinjuku Twilight”. 이 곡은
멜로디가 일품, 멜로디의 꽃, 멜로디의 극치, 끊임없이 찬사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이 재즈에
있어도 좋을지 라고 생각될 정도로 경이로운 곡이다.
신사 같은 에디 히긴스. 미국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 같은
에디 히긴스의 어디에서 이와 같은 미의식이 솟아나는 것일까?. “Nightingale”, “Shinjuku
Twilight” 이 훌륭한 2곡이 있어 이 CD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미스터 히긴스 감사합니다!
테라시마 야스쿠니
Swing Journal
2004년 12월호 (2005년 1월호 골드디스크선정 기사)
심도 있는 해석에 감탄!
“에디 히긴스 스타일”의
최고작!!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일본 팬들 사이에서도
부동의 위치를 굳히고 있는 피아니스트 에디 히긴스. 발매하는 앨범은 모두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데, 지난달 첫 크리스마스 앨범에 이어 등장한 ‘If Dreams Come
True’ 앨범에는 곡 해석에 독특한 감성과 기발한 재치를 선보이는 히긴스의 음악성이 더욱 농도 짙어졌다.
바바 케이이치
“노만 그란츠
& 오스카 피터슨”을 떠올리게 하는 명콤비
피아노 트리오의 요체는 우선 어떻게 피아노 선율을 아름답게
들리도록 하는가에 있다. 베이시스트, 드러머도 피아니스트가
정성을 깃들인 섬세한 터치와 때론 거친 노도와 같은 연주를 받아내고 지지하며 그룹으로서의 사운드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 요약하면 근본이 되는 것은 피아노이며, 강철의 선을 목제 해머로
두드리는 음에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에디 히긴스라고 하는 피아니스트는 기나긴 경력 끝에 일본에서
안주할 장소를 찾아내어 세심한 배려가 뒷받침된 훌륭한 기획과 대담한 제작 방식에 의해 오늘의 지위를 이루어내었다.
현재까지 만들어낸 일본에서의 제작 앨범은 10장이 넘으며,
이 앨범들은 모두 높이 평가 되어 우수한 판매 실적을 나타냈으며 몇 차례의 수상 경력에 빛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가 일본 레이블을 통하여 발매하는 앨범은
비너스 레코드의 사장인 테츠오 하라 프로듀서의 손을 거치게 된다. 이번의 《골드 디스크》에 빛나는 ‘If Dreams Come True’도
당연히 뛰어난 안목을 지닌 그의 손에 의한 것이다. 에디와 하라씨를 볼 때 항상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노먼 그란츠와 오스카 피터슨 콤비이다. 양쪽의 모습은 상당히 상통되는 면이 있다. Clef, Norgran, Verve 레코드회사를 설립하고 그리고 그 때마다 피터슨을 기용한 그란츠는 일종의
마니아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로 이것이라고 결정하면 집중 호우처럼 레코딩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브를
처분한 후에도 유유자적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Pablo를 창립하여 이번에도 피터슨을 기용하여
부추긴다. 그리고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기획력과 확실한 수완에 의하여 자극 받아 꽃을
피운 재즈 연주자들도 많았다. 보컬리스트 엘라 피츠제랄드가 그 대표격이다. 그란츠라고 하는 인물은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성격이었지만, 그의
덕분에 40년대부터 60년대의 재즈 황금기가 그 중심인 50년대를 정점으로 하여 레코드로 엄청난 양이 남겨진 사실은 역사로서 재즈를 해석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한편 우리의 하라
프로듀서는 성격이 온화한 신사로 그란츠와 같은 평판이 극단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한 가지를 밀고 나가는
제작 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제작 환경이 그란츠가 활약한 시대, 즉 모던 재즈의 발흥기부터 발전에 다다르는 시기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기에는 일종의 각오와 결의가 엿보이며, 그 강한 의지에는 무시무시함까지 느껴진다.
여기에서 다시 피터슨과 그란츠의 관계를 에디와 하라씨에 비유하는
것은 버브에 남긴 피터슨의 최후의 작품 ‘We Get Requests’와 일맥상통되는 느낌과 작업 방식을
이 ‘If Dreams Come True’에서 느끼기 때문이다.(버브의
작품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We Get Requests’는 크리드 테일러의 시대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여기에서는 배제하기로 한다). 에디의 터치가 피터슨이
떠올리게 하듯(강함을 연약함 속에 내포한 터치) 비슷하게
들려 어쩔 수 없다. 여기에는 물론 반석(큰바위)의 태세를 갖춘 리듬 섹션의 존재도 있다. Ray Brown과 Ed Thigpen의 서포트는 더 리듬 섹션으로 불릴 정도의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Jay Leonhart와 Joe Ascione의 베이스와 드럼도 이에
필적할 만큼 충실하다. 무엇보다도 서로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세 사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최고이다.
덧붙이자면 ‘We Get
Requests’는 스탠더드 중심으로 60년대 중엽 당시의 Hit Tune을 가볍게 요리한 것이었다. 타이틀에 나타나 있듯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곡이 리퀘스트로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보다 현재 그 평가와 인기가
높다. 녹음에 있어서도 그 훌륭함에 정평이 나 있다. ‘If Dreams Come True’의 레퍼토리에 있어서의 대중성, 예를
들어 넉살좋게 <Summertime> <Caravan> 그리고 <St Louis Blues>와 같이 유명한 명곡을 선정한 점, 연주의 가벼운 느낌 등은 이 ‘We Get Requests’와 상통하는
점이다.
현재 가장 음색이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원래 에디 히긴스라고 하는 피아니스트는 까다로운 오리지널을 ‘자 어떻습니까’라는 식으로 들려주는 타입이 아니라, 널리 알려져 친숙한 곡을 우아하게 연주하고 특유의 쉽고 섬세한 해석으로 오늘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스탠더드의 달인이라고 하는 위치이다. 이 섬세함이 여기에서는 종전
이상으로 진하게 와 닿는다. 동시에 드라이브 감각도 매우 안정되었으며 무조건적으로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필해야할 점은 고음에 있어서의 느긋함과 그 청령함인데, 현재 가장 음이 아름다운 피아니스트 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빠른 패시지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명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실제로 거의
없다. 가끔 에디 히긴스라는 피아니스트는 칵테일 피아노로 격이 떨어진다고
하는 엉뚱한 의견이 있는데, 이것은 촌스러운 피아노만 재즈라고 생각하는 무주관성과 인식 부족에 의한
것이다. 힘을 쓰면서 피아노를 치는 쪽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궁핍함에서 오는 발상인 것이다. 즐겁게 그러나 진지한
깊은 연주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토로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에디의 피아노 패시지는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쉬운 곡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점이 쉬운 연주가 인간적이고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이처럼 부드럽게 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재즈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재즈의 피아노 트리오라고 하는 형식은 솔로에서
자유롭게 펼치는 연주와는 달리, 그룹으로서의 통일감과 같은 목적으로 나아가는 일체감을 바탕으로 어떻게
아름다운 피아노 음을 만들어 내는가가 포인트. 이것은 팀웍이라는 것으로 동시에 삼자의 상호적 촉발 즉
인터플레이를 의미한다. 복잡하고 고급 작업인 것이다. 이것을
잘 옮기기 위해서 피아니스트는 멤버와의 하모니를 생각하여 각각의 기량을 음미한다. 고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디 히긴스의 최대의 장점인 악곡 해석의 정확성과
그 깊이.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에 있어서의 <쉘부르의
우산>으로 아마 수많은 해석 중에서도 최고일 것이다. <I
Will Wait For You>가 아니라 굳이 영화 원제로 설명한 것은 이 곡이 근원적으로 가지는 아스라한 슬픔을 그가 솜씨
좋게 추출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심오한 부분을 잘 파악하여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연주는 솔로로 스타트하여 유명한 선율을 한 단락 제시하고
천천히 앙상블로 옮겨가며 템포도 빨라진다. 그 자유 자재로운 완급은 정말 자연스러우며 훌륭한 재즈로
승화되어 있다. 노만 김블의 영어 가사에 의해서 전 세계에서 불려지고 있는
명곡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어인 원곡에는 영어의 문장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뉘앙스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우리의 <위를 보고 걷자>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에이 로쿠스케와 나카무라
하치다이에 의해 만들어진 이 곡은 당연히 일본어 가사로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렇지만 이 후에 빌보드
탑의 자리로 뛰어 오른다. 그 타이틀은 <Sukiyaki>였다. 영미에서는 이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는 위화감이
느껴질 것이다. 영어의 <I Will Wait For
You>라는 제목에는 이러한 엉뚱한 해석은 없다. 그렇지만 미쉘 르그랑과 영화 감독으로
원곡에 참가한 자크 드미에게는 조금 다르구나 라고 하는 기분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에디의 해석에서는 원곡으로 되돌아가서 연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그러므로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도 있는 해석을 하는 있다는 것이 연주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닌가.
다른 곡에서도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완성에 있어서도
매우 정교하며 치밀하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할 일인지를 미리 인식해 두어야 할 것이다.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이며 그리고 정서가 풍부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트리오가 일심동체를 이루어 멋진 앙상블을 만들어낸 것에도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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